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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의 한 가상화폐 시세정보 채팅방에 

“특급 호재를 입수한 가상화폐 이름을 밤 11시에 공개하겠다”는 운영진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곳에 가입한 회원만 1만7000여 명.7시간이 지난 밤 11시 정각, 

해당 채팅방에 예고대로 “웨이브를 추천한다”는 글이 떴다. 


2분 전 개당 5845원이던 시세는 정각에 1만원까지 100% 가까이 치솟았다. 

그러나 1분도 안 돼 매수세는 사라졌고 가격은 5545원으로 급전직하했다. 

이 과정에서 운영진과 이들에게 사전 귀띔을 받은 일부 투자자는 

수십억원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웨이브 시세 >


해당 채팅방이 작전을 시도한 가상화폐만도 지난 한 달간 10개가 넘고, 

이 가운데 70%가량은 실제 시세를 조종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형 가상화폐 돌아가며 ‘털어먹기’ 


6일 가상화폐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채팅방은 

국내에만 수십 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들 채팅방을 

시세를 퍼올린다는 뜻에서 ‘펌핑(pumping)방’이라고 부른다. 



1만70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D펌핑방, 

4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한 A펌핑방이 대표적이다.

 

비공개 회원제로 운영하는 중소 펌핑방까지 합치면 

수백 개에 달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추정이다. 


가상화폐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시세 조종을 통한 대박을 꿈꾸며 자신의 펌핑방을 홍보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이 같은 글이 몰린 나머지

 ‘펌핑방 홍보를 금지한다’는 공지를 올린 커뮤니티도 있다. 


이들은 주로 시가총액이 적어 조작이 쉬운 소규모 가상화폐를 타깃으로 삼는다.


비트코인에 이어 우후죽순 생겨난 가상화폐는

이날 기준 1300여 종에 달한다. 



이 중 국내 거래소에 상장된 

‘뉴이코노미무브먼트’ ‘코모도’ 등 

일반인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듣보잡’ 가상화폐가 펌핑방의 좋은 먹잇감이다.



시세 조종 과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세력은 펌핑방 운영자들이다. 


이들은 시세를 조종하려는 가상화폐를 조용히 매집한 뒤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월회비를 내는 ‘VVIP’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내는 월회비가 많을수록 일찍 정보를 얻어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 

서서히 오르던 가상화폐 가격은 이들이 일반 회원에게 해당 종목 매수를 추천하면서 ‘폭발’한다.


길어도 5분이면 모든 ‘작전’이 끝난다는 게 펌핑방 내부자의 설명이다.

추격매수하는 개인투자자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시세가 폭락하고,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갖고 있는 물량을 던지면서 

종전보다 더 낮은 가격을 기록하기도 한다.


한 펌핑방 관계자는 “한 번이라도 펌핑된 가상화폐 종목에는 ‘저력이 있다’는 

인식이 각인된다”며“이후 다른 세력이 알뜰하게 털어먹는다”고 귀띔했다.



세력 장단에 춤추는 군중심리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근본 원인은 가상화폐 시장에 가격제한폭이 없고

24시간 내내 초 단위로 거래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 


가격 급등락이 심해 투자자의 기대나 공포가 지나치게 빠르게 반영된다는 분석이다.



시세 조종을 막는 시장 기능인 

아비트리지(무위험 차익거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거래소 관계자들은

 “이론적으로 거래소마다 시세가 다르면 아비트리지가 일어나기 때문에

작전 세력이 설령 이득을 보더라도 일시적이고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가상화폐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비트코인 거래 등에 최소 30분 이상 시간이 소요되고,

작전은 단 몇 분 만에 순식간에 끝나기 때문에

세력이 활개를 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가상화폐 열풍’으로

 ‘묻지마 투자자’가 급증한 것도 한몫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시장에 가세한 사람만 200만 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커뮤니티마다 

“거래소에 어떻게 입금하는지 알려달라”는 등 

왕초보들의 기초적인 질문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 ‘개미투자자’는 펌핑방 관계자들이 올리는 

그럴듯한 글에 쉽게 선동됐다가 손실만 떠안기 일쑤다.



 직장인 조모씨(28)는 부모님께 빌린 4000만원을 

지난달 18일 D펌핑방에서 추천한 ‘웨이브’를 샀다가 절반을 날렸다. 


조씨는 “가상화폐 이름만 보고 투자한 나도 바보지만 

이런 사기꾼과 사기판을 묵인하고 있는 정부에도 잘못이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입법 미비로 처벌 근거도 없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등 주식시장에서는 

이 같은 시장교란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의 사각지대인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이 같은 일을 저질러도 법으로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금융위원회가 법무부 등과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협의 중”이라며 

“지금으로서는 관련 법령이 마련돼 있지 않아 제재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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